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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맛집

옥천수생식물학습원, 여유를 걷다!

by 블루베이글 2023. 6. 7.

울퉁불퉁, 꼬불꼬불, 이리저리 패인 길이 심상치 않다. 괜히 가는 건가, 공휴일이 낀 날인데 사람이 많으면 어쩌지, 날도 더운데 쉴 걸 그랬나 속으로 오만 생각을 하며 차를 끌고 조심스레 운전해 갔다. 모처럼 시간이 맞아 오랜만에 얼굴이라도 보자며 언니와 만나기로 한 곳은 옥천수생식물학습원.

공평하게 언니네 집에서도 한시간, 우리집에서도 한 시간 걸린다. 대청댐을 옆에 끼고 드라이브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식물원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 되자 길이 엉망인 상태라 운전하기가 쉽지 않다.

대청호수가 한눈에 들여다보이는 옥천수생식물원, 눈이 탁 트인다.

도착하고 나니, 나무와 풀과 물이 어우러진 광경이 너무 아름답게 눈에 와 닿는다. 똥손이라 식물은 집에 들여놓기만 하면 죽는지라 더는 양심상 키울 엄두를 못 내고 있는데 이렇게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정원에 오니 너무 좋다.

이 나이 먹도록 수련과 연꽃도 구분 못한다는 것을 이날 처음 알았다. "우와, 연꽃 이쁘다"는 내 감탄사에 'ㅉㅉ, 수련이란다'라는 언니, 어릴 때나 지금이나 언니들은 왜 항상 동생들보다 앞서 가는가?

오밀조밀 어여쁜 길과, 바람보다 천천히 가라는 글귀 하나하나까지 모든 것이 따스하다.

대체공휴일이라 사람이 많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걱정만큼 많지는 않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지는 게 어디 나 뿐이랴. 가족 단위로 연인 단위로 정해진 길을 따라 걷고 의자에 앉았다 걷고 해먹에 누웠다 그네에 앉았다 천천히 간다. 입장료 6000원이 적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도 아깝지 않다. 이익을 남기려는 곳이 아니기에 하루에 60명만 받는단다. 처음에는 왜 무료가 아니지 싶었지만 이 정도 정원을 관리하려면 한두 손길로 유지되지는 않을 것 같다. 수생식물원 안에는 널찍한 카페도 있어 대청호를 바라보며 한참이나 커피를 마시며 쉴 수 있었다.

딱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는 작디 작은 교회

상수도보호구역인지라 식당이 없는 것이 아쉬웠지만 충분히 이해가 갔다. 이렇게 좋은 곳에 식당까지 있다면 아마도 하루종일 유유자적 하며 아무도 나가지 않았으리라.

"나이가 드니까 꽃이 좋아진다. 나무도 좋고 풀도 좋고 이렇게 경치 좋은 곳에서 있는 게 행복해" 소박한 행복을 만끽하는 내게 언니가 현답을 주었다.

"나이가 들수록 자연이 좋아지는 건 자연으로 돌아갈 때를 준비하기 위해서래."

어쩌면 그런가 보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보다 어쩌면 살아갈 날이 적을 수는 나이가 왔다. 어찌 나이로만 따지랴. 젊은 시절 시험을 함께 준비하던 아는 동생은 급작스런 뇌출혈로 한 달간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 자연으로 돌아갔고, 감기 한 번 앓지 않았다던 사돈어른은 젊은 나이에 급성 암으로 자연으로 또한 돌아갔으니……

언젠가는 흙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올 테니, 흙에서 자라는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