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맛집, 원신흥동 매화집밥

일인분 한상 꽉 찬 차림은 언제나 행복하다
모처럼 휴일이지만 다들 바빠서인지 오늘 점심도 혼자 해결해야 한다. 한참이나 고민을 했다. 무얼 먹어야 잘 먹었다고 소문이 나려나?
소문까지 날 일은 아니지만, 비가 주룩주룩 오고 주말 내내 여럿이서 같이 밥을 먹다 보니 혼자라고 라면이나 끓여먹고 싶지는 않다.
오랜만에 원신흥동 박씨국시를 가려고 작정하고 나섰다. 음악도 뭐하나 꽂히면 죽어라 그것만 듣고 맛집도 하나 꽂히면 지긋지긋해질 때까지 계속 가는 타입이라 박씨국시는 혼자서도 빨랑빨랑 잘도 다녔다. 워낙 맛집으로 소문난 곳인데다 오후3시 영업종료, 재료가 소진되면 한 시만 조금 넘어도 문을 닫는 곳인지라 서둘러 갔다. 혼밥 좋은 것은 한 자리 정도는 합석해서 먹을 수 있다는 것 아닌가?
하지만 설레는 마음으로 도착했더니 아뿔싸! 너무 오랜만에 와서 깜박했다. 지금 간 날은 대체공휴일, 게다가 비오는 점심 시간. 문 밖으로 대기인원이 어림잡아도 열댓명은 넘어보인다. 그 와중에 악을 쓰며 울고 있는 아기들까지 보니 도저히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떠랴? 원신흥동에는 은근히 숨은 맛집이 많은 곳이니.....한군데 쯤 늦은 점심 한끼 해결 못할까 싶었지만, 가는 곳마다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근처 쌀국수 맛집인 능두네는 하필이면 월요일 휴무. 그 수육칼국수집도 비 오는 와중에 줄이 늘어서 있다. 원신흥동 백반 집으로 소문난 전주두레박 콩나물국밥집도 빈 자리가 없다.
그렇다고 몇 십분씩 기다리면서까지 먹고 싶지는 않다. 그러기에는 너무 비가 오는 휴일이지 않은가?

두리번거리다 백반전문이라 써 있는 간판 앞에서 잠시 고민했다. 복작거리는 이 먹자 골목에서 너무 한갓져 보여서 맛이 없는 건가, 간판은 왜 이름도 없는 건가, 괜히 맛있고 행복해야 할 중요한 한끼가 날아가는 게 아닐까 하면서......

원래는 매화밥집이라고 써 있었을 텐데 세월에 글자가 바래서 보이지 않는다. 붉은 색의 백반전문은 또렷하다.
게다가 계란후라이도 추가할 수 있다니(1000원) 무조건 합격이다. 지구촌을 정복한 음식인 계란후라이는 맛이 없을 수가 없다. 다만 1인 손님을 받으려나 싶어 걱정인데, 이국적인 외모의 사장님은 흔쾌히 된다고 한다.

고등어 한토막은 작지만 말끔한 한상차림이다.
백반집을 갈때면 대체로 고민되는 게 가격도 저렴하고 양이 많은 곳은 좀 지저분하고, 말끔하고 맛있는 곳은 가격이 센 편이라 어느 쪽을 가는 것이 우선인가가 고민인데 이제는 말끔한 곳을 좀더 선호하게 되었다. 이곳은 그 부분에 있어서는 단연 추천하고 싶다. 아무리 코로나가 지났다고 하더라고 수저통에서 수십명이 주물럭거리던 저와 숟가락을 꺼낼 때면 사실 조심스러워지는 부분이 있다. 아무리 깔끔하고 비싼 집을 가더라도 수십개의 수저가 뒤범벅되어 있는 곳은 좀 꺼려지는데, 이곳은 말끔하게 개별 포장이 되어 있다.(지구에게는 미안하지만 식당 수저에서 대량의 암모니아 ㅡㅡ;;;;;가 검출되었다는 뉴스를 듣고 나서는 좀 찜찜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혹시나 김치나 밑반찬을 재활용하지 않을까 싶은 걱정도 썰지 않은 김치를 갖고 와 직접 가위로 잘라 주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 그날그날 국과 반찬은 조금씩 바뀐다고 하는데 콩나물국은 젓국으로 간을 한 듯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았다. 양배추도 살짝 덜 익은 느낌이다. 아무래도 사장님이 외국에서 오신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두 개씩 정갈하게 담긴 반찬과 잘 익은 생선 한 토막은 이날 삼십 분 동안이나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고 헤매던 나를 위로해주었다. 모든 밑반찬이 간이 딱 맞았다. 짠 음식도 이제는 속이 따갑고 싱거운 것은 맛이 없는데 희한하게 나물도 감자볶음도 간이 딱 맞았다. 그래, 한끼를 이렇게 감사하게 해결하지 않았는가?그것으로 충분하다.